주요 전시작품로마의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San Pietro in Vincoli)에 있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시작된 '노예들' 시리즈는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미켈란젤로 사후 코지모 1세의 소유가 되어 피티 궁 내 보볼리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가 1909년에, 모사품으로 대치하고 오리지널은 이곳 아카데미아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본격적인 작업은 1530년경을 전후하여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깨어나는 노예(Awakening Slave)'와 '아틀란티스(Atlantis)'가, 오른쪽에 '젊은 노예(Young Slave)'와 '수염 난 노예(Bearded Slave)' 네 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내적 고통과 실제와 이상이 갖는 유한성과 무한성 사이의 대비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낸 작품은 없다고 할 만큼 이 연작에는 미켈란젤로 필생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끝내 벗어나지 못할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아틀란티스'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잔뜩 부풀어 오른 팔 근육이 머리 위의 짐을 들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위의 돌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아틀란티스'가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대리석 안으로 침잠되어 가고 있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든다. 1503년에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성당의 강론대(Tribune)를 장식하기 위해 12사도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제작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첫 작품인 '성 마테오(San Matteo)'만 미완인 채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다. '노예들'과 더불어 미완이면서도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 작품은 인간의 내적 고통이 외부로 표현될 때 얼마나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자신을 견고하게 둘러싼 채 놓아주지 않는 것 같은 대리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목과 팔의 근육을 팽팽히 긴장시킨 모습의 '성 마테오'는 육체와 정신 간의 극적인 투쟁을 은유하고 있다. '수염 난 노예' 옆에 세워진 또 하나의 미완성 조각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Pietà de Palestrina)'는 작품 스타일로 보아 미켈란젤로의 것으로 추정은 되나 정확한 작가가 확인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완성된 부분이 많은 이 작품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표현한 것이다. 생명이 빠져나간 예수 그리스도의 늘어진 모습은 돌을 깎아 표현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성서 속의 인물 다비드를 소재로 한 조각품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후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다비드이거나 다비드의 승리 뒤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다는 종교적인 메시지가 강한 데 비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골리앗과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기 직전의 긴장된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에 상대방의 허점을 탐색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긴장된 순간일 것이다. 작품의 축은 머리부터 오른발로 이어져 내려온다. 여기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다비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거인을 향해 부릅뜬 눈에는 분노와 공포, 긴장감과 투지가 동시에 스며 있고, 허리 아래로 내린 손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불끈불끈 솟아 있는 핏줄에서 마치 살아 있는 듯 에너지가 느껴진다. 돌멩이를 쥐고 어깨에 얹은 왼손은 금방이라도 앞으로 뻗어 거인을 공격할 듯 아슬아슬한 순간을 나타내고 있으며, 앞으로 조금 구부러진 왼쪽 다리는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곧 달려 나갈 준비자세 같기도 하다. 다비드의 얼굴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와 양 측면에서 보았을 때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정면에서 바라본 다비드는 호기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막 인생의 황금기로 들어서기 시작한 젊은이의 표정을 하고 있다. 왼쪽(즉 다비드의 오른쪽 얼굴)으로 돌아가면 적에 관한 모든 것을 꿰뚫어보겠다는 듯 치밀하고 냉정한 분석가의 표정이 나타난다. 다비드의 왼쪽 얼굴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럼에도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다비드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놀라움은 신체의 비례이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아래에서 위를 향해 쳐다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도록 치밀하게 비례를 계산하였다. 실제로 다비드를 보통사람의 눈높이와 같은 위치에서 보면 다소 이상하게 보인다. 팔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에 비해 더 굵고 더 길며 머리는 가분수처럼 크다. 그러나 2m 정도 되는 받침대 위에 세워놓고 올려다보면 다비드는 가장 완벽한 인체의 비율이라는 황금비율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다비드는 가로로 길쭉한 거대한 원석으로 제작되었는데, 당시 피렌체의 한 조각가가 먼저 이 원석으로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버린 것을 미켈란젤로가 거두어 이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피렌체 출신 화가들의 종교화가 전시된 피렌체의 방(Sala Fiorentino)에서는 15세기 전후에 제작된 패널화 등의 종교화를 주로 볼 수 있다. 산티 디 티토(Santi di Tito, 1536~1603)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와 성모와 성인들(Cristo deposto dalla Croce con la vergine e santi)'과 같은 작품이 있다. 비잔틴의 방으로 들어오면 맨 처음 비잔틴 미술의 특징이 엿보이는 보나귀다(Pacino di Bonaguida,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화가로 세밀화의 창시자로 여겨짐)의 '생명의 나무(Tree of Life)'가 시선을 끈다. 오각형의 패널 한가운데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좌우로 나무처럼 가지를 뻗은 사이사이에는 성경의 내용을 묘사한 작은 그림들이 원 안에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 양식을 “가난한 자들의 성서”라고 부르는데, 문맹이거나 책을 살 돈이 없는 중세의 가난한 사람들이 신앙심을 굳게 유지하면서 언제나 순종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지배층이 화가에게 의뢰하여 남긴 작품이다. 중앙의 십자가가 안정되고 엄숙한 중심축 역할을 하는 반면, 작은 원 안의 그림에서는 온갖 사건들이 다이내믹하게 벌어지고 있다.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Maddalena penitente e otto storie della sua vita)'라는 작품은 막달레나 그림의 대가(Maestro della Maddalena)라고만 알려진 13세기 피렌체의 한 대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이름은 확인할 수 없다. 이 화가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닦아드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막달레나의 머리카락으로 그녀의 의복을 만드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그는 다른 대가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후에 코포 디 마르코발도(Coppo di Marcobaldo)와 치마부에(Cimabue/조토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13세기 이탈리아 화가로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평가받음)의 혁신적인 스타일을 습득하는 데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1280년대에 예술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재치 넘치고 영혼의 힘이 가득한 측면 패널화를 많이 남겼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베르나르도 다디(Bernardo Daddi, 조토의 화풍을 계승한 14세기 이탈리아의 종교화가)의 '십자가에 못 박힘(Crocifisso)'이다. 십자가 형태로 나무판을 잘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함으로써 조각과 회화가 혼합된 느낌을 준다. 이런 유형의 그림은 13~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나무판을 측면 패널(Lateral Panel)이라고 부른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회화작품 중 가장 중요한 두 점은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의 아들인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파 화가)의 '세례자 성 요한(San Giovanni Battista)'과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ddalena)'이다. 두 작품 모두 피렌체의 산 프로콜로 성당을 장식하던 제단화로, 두 성인의 슬픔과 고뇌를 앙상한 몸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의 몹시 추워 보이는 듯한 몸짓과 헝클어진 긴 머리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은 인간사의 모든 고달픔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상하로만 길게 절단한 패널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사비네 여인의 능욕(Ratto delle Sabine)'은 잠볼로냐(Giambologna), 1529~1608의 석고 조각으로 젊은 남자가 늙은 남자를 물리친 뒤 여자를 움켜 안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뒤틀린 인체 묘사를 통하여 두 사내의 힘이 뿜어내는 엄청난 충돌 에너지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매너리즘 계열(어떤 기법이나 형식이 반복되어 독창성과 신선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라파엘로 사후 르네상스 몰락 후의 일련의 미술에 대한 통칭)의 조각 중 최고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 전시실에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제작한 정교한 태피스트리가 7점 전시되어 있는 등 르네상스 이후의 피렌체 실용미술의 이모저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다. 왼쪽 마지막 전시실은 19세기 아카데미아의 교수들이 남긴 조각품을 전시한 “19세기의 방(La Sala dell'Ottocento)”이다. 슈퍼마켓의 진열장을 연상시키는 전시대에 각기 다양한 주제의 대리석, 석고 작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중 벽에 걸린 로렌초 바르톨리니(Lorenzo Bartolini, 18~19세기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화가)의 '피에트로 레키를 위한 모뉴먼트(L'Orante per il monumento a Pietro Recchi)'라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부조로 표현한 이 작품은 화려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조각에서 벗어나 점차 현대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조각 양식을 나타낸다. |